정부가 내년도 추곡수매가를 동결하겠다고 결정함에 따라 조만간 열릴 국회 최종심의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추곡수매가 결정과정을 되짚으면 국회 심의를 통한 추가조정 가능성을 기대할 만도 하지만 올해 상황은 사뭇 다르다. WTO(세계무역기구) 뉴라운드 출범으로 농산물시장 개방압력이 거세고 나라 안에서는 쌀산업 재편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을 타고 양곡유통위원회는 수매가 4∼5% 인하 방안을 내놨으며 정부 또한 ‘쌀 경쟁력을 위한 수매가 인하’를 여러 번 강조, 결국 4일 국무회의에서 수매가 동결을 확정했다. 농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며 ‘동결안 철회’와 ‘생산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도 추곡수매가 동결의 의미와 파장, 문제점을 살펴본다.



■ 정부 “수매제도 전환” 내세워

정부는 이번 추곡수매가 동결안이 쌀 수급현황, 국제경쟁력 강화 등 대내외적 여건과 지난달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를 충분히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 우리 쌀산업의 위상을 생각할 때 수매가를 인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단계적으로 국내외 가격차를 줄여나가야 하지만 갑자기 인하할 경우 쌀 생산농가에 미치는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점”을 감안, 수매가 동결은 ‘연착륙을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1996년 이후 연속풍년, MMA(최소시장접근)에 따른 수입쌀 증가, 지속적인 소비감소 때문에 재고가 적정수준을 초과하고 있다는 점을 수매가 동결의 한 근거로 내세웠다.

아울러 정부는 국내 수매가가 미국산 쌀값의 5.8배, 중국산의 6.1배, 태국산의 9.1배 수준임을 실례로 들어 우리 쌀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도록 국내외 가격차를 줄이고 2004년 WTO 쌀 재협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등 양정 여건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최근 농가소득이 IMF 체제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올해 산지 쌀값이 8% 이상 하락함에 따라 농가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양곡유통위원회의 인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는 논농업직접지불제도를 제외하고는 농가소득을 보전할 만한 농가소득 안정망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중장기적으로 농가소득 안정망을 확충해 나가면서 국내외 가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방침이다.



■ 정부 ‘향후 양곡정책’ 일부 제시

내년도 추곡수매가 동결과 관련해 정부는 ‘양정전환의 신호탄’이니 ‘품질위주로의 정책전환 시작’이니 하며 배경설명을 덧붙였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 조수입이 지난해에 비해 2천600억원 정도 감소해 직접지불제도 지원금 1천952억원을 포함해도 올해 쌀농가 조수입은 지난해보다 650억원 감소했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도 쌀생산 조수입도 올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직불제 단가를 1ha당 40∼5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부방침에도 불구하고 직불제 확대시행에 따른 예산확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농민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격지지 정책을 축소하고 소득보전책을 확대하는 한편 단기적으로 이미 추진하고 있는 품질위주의 쌀 생산 및 유통, 소비촉진대책을 꾸준히 진행해 쌀산업 지원방식 개선, 민간유통 활성화, 미곡종합처리장 균형발전 유도 등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대통령 직속 ‘신농업…특위’ 설치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수매가 동결 결정과 함께 대통령 직속의 ‘신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칭)’를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WTO 뉴라운드 출범으로 농업보호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내년부터 경쟁력을 높이고 개별농가의 소득을 안정시켜 나가는 것을 중점으로 한 새로운 농업, 농촌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어업인, 소비자, 국회, 정부, 학계 대표 등으로 구성될 ‘신농업 특위’는 위원회 업무지원을 위해 농림부와 관계부처 공무원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를 두는 한편, 시·도에도 지역단위 위원회를 별도로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 농민단체 “쌀농사포기 선언” 반응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수매가 동결 결정을 “농업포기 선언”이라 단정하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농민단체들은 이번 결정을 2004년 쌀 재협상에 대비한 정부의 인위적 수매제도 개편이며 시장개방 논리를 농업에 오용한 결정적인 사례로 꼽았다.

특히 물가인상률 반영, 최소한의 생산비 보장 등 농민들의 요구를 정부가 묵살한데다 이미 산지 쌀값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내년도 수매가를 동결한 이번 결정은 결과적으로 내년도 쌀값 하락을 부추긴다고 농민단체들은 지적했다.

농민단체들은 앞으로 소득보전 대책이 중요한 농업정책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논농업직불제나 조건불리지역직불제 등 현행 직불제 단가로는 어림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다른 직불제를 제외하고도 쌀 80㎏당 직불제 지원금이 1만7천69원(2000년)이며 이는 우리나라 현행 논농업직불제 단가의 4배 수준이다.

EU(유럽연합)이나 일본의 경우도 소득보전이나 생산비 보장을 통해 농업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안정망을 구축하지 않은 채 경쟁력을 내세워 추곡수매가를 동결한 이번 결정에 대해 농민들은 “농업포기 선언”이라며 “철회”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