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영농규모화, 증산 등 생산비 절감 선행과제
# 가공·유통…RPC 구조조정, 고품질 다용도 제조 전환
# 소비…급식확대 등 범국민운동, 체계적 대북지원 필요

식량자급률이 30%에 밑도는 상황에서 쌀산업의 붕괴는 국가(식량)안보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뻔하다.

많든 적든 외국쌀 유입이 꾸준히 늘어 우리 쌀산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2004년 쌀 재협상은 쌀산업의 분수령이다.

이 협상에서 우리가 '관세화 유예'를 관철하더라도 최소시장접근(MMA)에 따라 외국쌀 유입은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날 듯하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수확기 쌀 수급대책'에 이어 4일에 '(2004년 쌀 재협상에 대비한) 쌀산업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대책은 뾰족한 수도 담고 있지 않을뿐더러 2004년 쌀 개방(관세화)을 기정사실로 밀어붙이려는 의도를 내비치거나 증산정책을 뒷전으로 미루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여론의 집중포화를 피할 수 없었다.

농업인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대외 개방압력을 물리칠 각오로 재협상에 임하고 국내 쌀산업 보호와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 쌀 수급 불안요소 상존

국제식량 관련 기구들은 올해 세계 쌀 생산량이 3억9천800만t, 소비량이 4억300만t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통계에 따르면 세계 쌀 생산량 가운데 장립종이 3억5천900만t, 약 90%이며 중·단립종이 3천860만t이다.

세계 쌀 교역량은 지난해 2천300만t, 올해 2천200만t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돼 국제 쌀 시장은 이른바 '엷은 시장(thin market)'으로 불리며 교역량이 조금 변해도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중·단립종 쌀 교역량은 전체 교역량의 10%인 200만t 수준에 그쳐 수급불균형 상황이 발생하면 국제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할 뿐 아니라 쌀 수입국의 국가안보는 크게 위협받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쌀 수급 전망을 통해 2004년 쌀 재협상의 5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한 바 있다.

이 시나리오들은 크게 '관세화 유예냐 도입이냐'에서 갈리고 두 경우는 다시 2004∼2010년 기간에 최소시장접근 수입물량을 4%, 6%, 8% 등 얼마나 늘리는가, 관세율을 10%, 15% 등 어느 정도 줄이는가에 따라 결과를 추계했다.

농경연은 이 추계결과, 2005년 이후 쌀의 실질가격이 관세화를 유예하면 완만하게 하락하고 관세화할 경우 급속한 하락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 쌀 생산비 절감 과제

우리 쌀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생산비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농업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쌀산업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비'를 꼽는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 쌀 생산비의 15%에 그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쌀 생산비를 쌀 수출국과 비교하면 우리 쌀의 가격경쟁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쌀 1㎏ 생산에 우리나라는 1천109원이 드는데 미국(중립종)은 500원 정도로 절반도 채 되지 않으며 태국(중립종)은 164원, 중국 166원, 베트남 113원, 호주 101원 등으로 우리나라 생산비의 45.1∼9.1% 수준이다.(표 참조)

이와 관련해 박준근 전남대 교수는 "현재의 영세한 영농규모와 노령화한 노동력으로는 선진 수출국과의 생산비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현상유지도 어렵다"고 설명하고 "농지의 집단화, 영농규모화사업 등을 적극 실시하는 한편 젊은 영농후계자들을 영입해 생산비 절감에 진지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증산정책 이탈 선언'에 대해 뒷말이 많은 것도 어느 정도 쌀 생산비와 관련이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쌀 연구관계자들은 고품질 쌀 생산정책에 동의하면서도 "증산을 위한 기술이나 품종 개발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일부 관계자들은 "일시적 과잉문제 때문에 식량안보문제를 등지겠다는 발상"이라고 혹평하는 한편 "양질미 생산위주로 가되 다수확기술개발을 병행해 생산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 유통활성 전제, RPC 재편

정부가 수매기능을 크게 줄이고 이를 민간유통부문에 맡기는 과정에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쌀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전국 320여 미곡종합처리장(일반 120여 곳, 농협 199곳)이 최근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 등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쌀값의 계절진폭이 1%에 넘나들고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자 미곡처리장 운영 농협조합장들은 "올 가을에 쌀 수매 거부도 불사하겠다"며 정부와 농업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수탁판매제 도입, 운영자금 금리인하, 자금지원 확대 등으로 미곡처리장 경영안정화를 꾀하고 벼 매입자금 3천억 원을 특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업인단체들은 수탁판매제 도입을 반대하는 한편 쌀 재고문제의 진앙이라 할 수 있는 미곡처리장을 재편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 관계자는 "미질을 향상하고 정부수매분을 흡수한다는 면에서 미곡처리장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쌀 가공기술 개발과 미곡유통 전문성 획득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 "자체적으로 운영효율을 높이지 못하는 미곡처리장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조곡 140만t을 생산하는 호주에는 미곡종합처리장이 6곳에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매기능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농협 미곡처리장 199개소는 과다한 편인데다 그 전문성마저 떨어지기 때문에 적자운영이 고착한 미곡처리장은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후방산업 육성 통해 소비확대

한유무세배아미社(대표 윤종락)는 최근 다이아몬드 정미기를 개발, 특허를 획득했으며 본격 생산을 앞두고 있다.

한유社 정미기는 이른바 무세미(無洗米, 씻지 않고 밥 짓는 쌀)를 생산할 수 있는 데다 쌀눈 함유 100%의 배아미(현미)는 물론 90∼50% 배아미 등 자율조절생산이 가능하다.

특히 이 정미기술은 물로 씻어내는(습식) 무세미 생산기술보다 앞선 건식 정미기술로서 가공한 쌀의 저장성이나 맛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도정수율도 높고 쌀뜨물로 인한 오염을 방지할 수 있어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윤종락 대표는 "식생활의 간편화 추세로 쌀 소비확대가 어렵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맛에 맞게, 먹기 쉽게 고품질의 쌀이나 밥을 생산하면 소비확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역설했다.

윤 대표는 아울러 "미곡유통업체나 정부가 군인이나 학생에게 좋은 쌀, 맛있는 밥을 공급해야 비로소 소비가 늘어난다"고 지적하고 "쌀 생산에 이은 가공, 유통산업 등을 정부가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준근 교수도 쌀 소비확대와 관련해 "쌀의 고품질화 내지 이질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수출시장을 겨냥한 쌀 가공품의 다양화와 청소년들의 식품기호에 맞는 제품의 가공을 점차 늘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쌀산업 미래, 정부의지에 달렸다"

농업인들은 2004년 쌀 재협상을 앞두고 시장개방압력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면서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업인단체들은 "정부가 얼마 전 내놓은 종합대책이 졸속한 정책의 표본"이라고 비판하고 "만일 쌀산업을 지키겠다는 정부의지를 보이려면 쌀 종합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며 대책 재수립을 촉구했다.

전업농중앙연합회 이천해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쌀산업의 새 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어떤 틀이든 농가소득 보전과 쌀산업 유지를 위한 합당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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