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가 지난달 29일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한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쌀 재고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나름대로 단기처방을 내놨지만 농업인은 물론 학계, 경제계 전문가 대부분이 '미봉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재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한갑수 장관은 2일 한국방송공사(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대책발표 후) 전업농연합회 등 생산자단체 간담회를 통해 충분히 검토한 결과,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는 둥 "(정부대책을 반대하는 것은) 농업인들이 정확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주부터 설명회를 할 것"이라는 둥 '최선의 대책'이라고 역설했다.

◆ 쌀값 연말까지 하락 예상

이번 대책의 뼈대는 정부가 올 수확기에 농협을 통해 시장가격으로 161만 석을 추가로 매입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연평균 300만 석의 정부미 공매를 올해 100만 석으로 줄이는 등 시장공급량을 줄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농림부는 이번 대책이 실효를 거두면 올해 수확기 쌀값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방출을 줄이고 수매를 늘리는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올 수확기이후 쌀값 약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부대책이 재고미를 처리하는 방안이 아니라 정부창고에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미봉책이기 때문에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대책을 통해 계절진폭을 3%까지 끌어올린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재고미 처리나 쌀 소비책이 없는 상황에서 내년 단경기 쌀값이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농업인들이 서둘러 수확기에 쌀을 처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인들은 오히려 역(逆) 계절진폭(수확기 쌀값보다 단경기 쌀값이 낮은 경우)을 우려하고 있다.

◆ 핵심 비껴간 '수탁판매제도'

정부는 이번 대책에 '수탁판매제도'를 히든카드로 내밀었다. 농림부는 이 제도를 "대다수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선진유통시스템"이라며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수탁판매 활성화를 위해 미곡처리장 지원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제시한 수탁판매제도는 농가가 수확기에 생산한 벼를 미곡처리장에 위탁하고 미곡처리장은 수탁한 벼에 대해 선도금(70%수준)을 지급하고 시중에 판매한 후 나머지 대금을 정산한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 시행을 위해 정부는 미곡처리장 운영자금 금리를 5%에서 3%로 인하하고 1곳당 지원규모를 내년부터 18억 원으로 늘리는 한편 미곡처리장의 벼 매입과 수탁 자금으로 전체 3천억 원을 추가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농업인단체들은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한다. 농협 미곡처리장 운영에 약간 도움이 될지언정 쌀값 하락 방지는커녕 가격하락으로 인한 농가소득 감소는 전혀 보전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업인들은 민간유통 활성화를 위한 미곡처리장 구조개선이나 자구책을 통한 효율적 운영방안도 없이 '찔끔 퍼주기'식으로 미곡처리장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 "대책 다시 수립해야 한다"

농업인들의 요구는 "쌀값 지지와 농가소득 보전, 쌀산업 유지와 식량안보 확보"로 일관한다.

이 요구에 빗대면 정부 대책은 한참 모자라는 것이 사실이다. 농업인단체들은 정부대책에 대해 즉시 반대의 뜻을 피력했으며 "대책 재수립"을 요구하는 등 올 가을 '쌀 투쟁정국'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대책이 '고육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농업인들의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있지만 대책으로 인한 정부의 재정부담이 쌓이는 악순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협 미곡처리장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할 경우 정부가 이차보전 형태로 껴안아야 할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재정 압박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정도의 재정부담으로 쌀산업을 살릴 수 있다면 대책추진을 반기겠지만, 문제는 근본적인 극복책이 되지 못할 바에 재정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이것이 농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대책 재수립' 요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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