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업계의 화두는 뉴라운드와 쌀이다. 아마도 이 두 단어만큼 우리 농민의 고통과 한숨을 동반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뉴라운드의 출범과 제4차 WTO 각료선언문을 절망적으로 받아들이는 농민을 겉으로는 위로하면서도 내심 흡족한 느낌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무역에 70%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있어서 도하의 WTO 각료회의는 성공적이었다”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농업이 국가 경제 산업의 근간이고 농업이 국민의 생명산업이며, 민족의 안보산업이라는 구호는 그저 말잔치에 그칠 뿐 그에 걸맞는 정책과 대우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농업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목이 쌀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우리 농업인의 70% 이상이 쌀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이제 쌀산업도 구조조정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며 내년도 추곡수매가의 인하를 획책하는 행태도 가슴에 분노가 치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태 농림부장관은 얼마전 당정협의회에서 “추곡수매가를 인하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발언은 쌀재고 누증과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김장관의 발언은 해석하기에 따라 주곡 생산이 줄고 기반이 허물어져도 소득만 보장되면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주곡인 쌀은 반드시 생산기반이 지켜져야 하고 이에 종사하는 필요충분한 인원도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혹시 모를 식량부족의 경우를 대비해서도 그러려니와 민족의 번영과 국가발전의 기본바탕은 식량자원의 안정확보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조만간 농민대표, 농업전문가, 정부, 여야 정당이 함께 하는 범국민적인 농업대책협의회를 구성할 움직임이다. 이 협의회가 구성되고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반드시 쌀산업의 식량안보적 기능이 민족과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이 범국민적으로 강조되고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제정책은 주곡자급 정책을 기반으로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글로벌화 되고 더 나아가 유니버셜화 된다고 하더라도 ‘식량자급’은 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국민의 먹거리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나라의 번영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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