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탐방 시리즈①-한국양봉협회

인터뷰-정해운 한국양봉협회장

가업 이어 양봉에 투신…농가 이익보호에 최선
정해운 한국양봉협회장은 가업을 이어 양봉에 종사해왔다. 가족이 순전히 양봉으로 생계를 이었다는 정 회장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생산한 벌꿀을 배달하며 학비를 조달했다고 한다.
가업을 잇다보니 정 회장의 사명감도 남다르다. 양봉농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많으나 그 중에서도 운반과정에서 생기는 사고가 많다.
꿀벌은 낮에 이동하면 죽기 십상인 까닭에 주로 밤에 이동하는데 이때 크고 작은 사고가 잦다. 밤에 옮겨야 하고 또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
정 회장 자신도 벌통 운반차량이 전복하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이때 정 회장은 민사소송에서 변호사 없이 벌 200통, 1천300만원 판결을 이끌어낸 뒤 이후 7, 8년 동안 다른 양봉농가들 피해보상에 앞장서왔다. 덕분에 이제는 운송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소송 없이 운송회사에서 적정한 피해보상을 할 정도로 세태가 바뀌었다고 한다.


◇ 양봉농가 4만2천여나 돼
농림부 기타가축 통계에 따르면 2001년 12월말 현재 양봉농가는 4만2천666호나 된다. 이들 4만2천여 양봉농가가 갖춘 사육양봉군(群)은 총 153만176군. 이 가운데 재래종(토종)을 사육하는 농가는 1만8천298농가, 사육양봉군은 26만2천443군이다.
양봉농가들이 올해 아카시 꿀 흉작으로 시름겹다. 봄 황사가 재를 뿌린 데다 비가 자주 오고 기온까지 급상승하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평년 수확량의 40∼50%밖에 거두지 못했다.
양봉농가들만 시름겨워하지 않는다. 과수농가들도 개화시기가 10여일 빨라지고 화분매개곤충인 꿀벌 활동이 이뤄지지 않아 착과율이 크게 떨어진 데다 기형과가 많이 생겨 걱정이 크다.
이처럼 양봉산업은 단순히 벌꿀을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라 여러 농업분야에 필요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 협회 1967년 설립, 양봉농가 권익대변
1967년에 설립한 한국양봉협회는 1973년에 4월 4일을 ‘양봉의 날’로 정한 뒤 해마다 기념행사를 통해 양봉농가들 협력과 화합을 다지고 있다.
전국 4만2천여 양봉농가들을 대표하는 한국양봉협회는 1979년에 양봉산물검사실을 따로 둬 벌꿀의 진위를 가리거나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같은 양봉산물 성분분석을 시작했다.
이 검사실은 이후 양봉산물연구소로 확대 개편돼 검사뿐만 아니라 품질관리기술 개발, 양봉산물을 이용한 식품 개발에도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양봉협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양봉농가들 권익보호와 상호협력, 양봉산업 발전을 꾀하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 국민보건, 국민건강 향상에 이바지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일정정도 경제발전이 이뤄지자 많은 사람들이 건강문제, 아울러 건강식품에 주목하기 때문. 이에 따라 의학계도 벌꿀은 물론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등 양봉산물 기능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벌침(봉침)은 만성질환자들에게 종종 이용되는 한편 가축질병을 고치는 데도 쓰인다.


◇ 환경친화형 ‘농축산업’
이 협회 손재형 양봉산물연구소장은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축산 폐수나 분뇨 처리에 골머리 앓고 있고 이를 정화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며 “양봉산업은 축산폐기물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환경을 정화하는 환경친화형 농축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꿀벌들이 여러 농업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훨씬 크다.
주변 농작물에 대해 꿀벌들의 자연적인 화분매개가 가능함으로써 인공수정에 의존하는 것보다 노동력, 생산단가가 월등히 저렴하면서도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점이 있다.
요즘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벌침에 의한 가축질병 치료도 양봉산업이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벌침으로 가축질병을 고친 경험이 있는 경기도 여주의 한 축산농가는 “벌침 치료법은 가축 유방염 같은 병에 항생제를 쓰지 않고 치료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꿀벌 화분매개 ‘무한한 가치’
꿀벌은 식량생산 작업과정에서 화분매개가 이뤄진다. 식물계에서 근친교배를 방지하고 타화수정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붓을 이용해 수술에 있는 화분을 찍어 암술에 전하는 인공수정이나 곤충, 특히 꿀벌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꿀벌의 화분매개는 큰 효과를 낸다.
미국의 경우, 30년 전인 1970년 농업 총생산액 1천130억달러 가운데 벌꿀 총생산액은 4억달러였으며 꿀벌의 화분매개에 의존해야 하는 농작물 생산액은 약 400억달러에 달했다. 특히 미국 마틴 박사는 보고서(The use of bees crop pollination)를 통해 ‘만약 꿀벌의 화분매개 작용이 없었다면 생산액 400억달러의 20%인 80억달러어치는 줄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농무성 보고에 따르면 이렇게 꿀벌의 화분매개에 의존하는 작물은 90종이 넘는다. 우리 나라도 정확한 통계자료는 나오지 않았으나 대략 20여종이 화분매개를 통해 작물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 꿀벌수입관세율 246% 관철해야
국내 양봉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취약한 점을 고려하면 국가차원의 보호와 육성은 매우 절실하다.
양봉학회에 따르면 벌꿀을 연간 0.1t 이상 생산하는 50여 나라의 평균 벌꿀가격은 1㎏에 1.5∼2달러(우리돈 약 2천∼2천600원) 수준. 우리나라 벌꿀이 1㎏에 1만원 정도인 것에 대면 가격경쟁력이 한참 떨어진다. 밀원 환경이 열악해 단위당 생산량도 캐나다나 중국, 멕시코에 견줘 절반에 조금 웃도는 정도다.
그러나 벌꿀 품질에 있어서는 외국 벌꿀보다 우리 벌꿀이 훨씬 뛰어나고 소비자들도 우리 벌꿀을 선호한다는 점, 양봉이 그 산물은 물론 농업, 의료분야에 두루 활용된다는 점을 따지면 앞으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산업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면에서 한국양봉협회는 무엇보다도 벌꿀수입관세율 문제를 소홀히 다루지 말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재협상에서 현행 246% 수입관세율을 관철하지 못하면 외국의 값싼 벌꿀이 무차별적으로 수입돼 우리 양봉산업은 살아날 길이 없다는 게 양봉협회나 양봉농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해운 한국양봉협회장은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미국 같은 농업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양봉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차원에서 적극 보호하고 있다. 벌꿀 같은 양봉산물은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고 꿀벌은 꿀벌대로 여러 농업분야, 이제는 의료분야에도 활용된다”며 “양봉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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