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보리를 원료로 만든 밥, 떡, 술 모두를 찬밥보다도 못한 천덕꾸러기 취급하기 일쑤였다. ‘보리떡을 떡이라 하며 의붓아비를 아비라 하랴’하며 보리떡은 아예 떡 취급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보리술은 보리술 맛’이라 해 ‘술맛이 오죽하랴’라고 빈정댄다.

이 모두가 보리쌀 때문이다. 보리쌀은 물러지는 것이 늦어 밥 짓기가 귀찮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 밥알이 쉽게 흩어진다. 하루, 이틀 두고 먹다두면 쉽게 딱딱해지고 누렇게 변색이 됐다. 그래서 밥 짓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압맥이 등장하고, 쌀과 같이 골이 없는 깨끗한 보리쌀을 얻기 위해 보리 골을 중심으로 알맹이를 반으로 자른 할맥을 이용하기도 했다.

근래에 압력 밥솥이 나오고 부터는 밥 짓는 문제는 해결된 듯 싶었다. 그러나 품종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작물시험장에서는 위와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리에도 찰성 인자를 도입하기로 했다. 찹쌀의 전분 구조가 대부분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돼 있어 차진 것처럼 보리에서도 찰보리를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1984년! 드디어 최초의 겉보리 장려 품종 ‘찰보리’가 탄생했고 1988년에는 쌀보리 장려 품종 ‘찰쌀보리’가 탄생했다. 지금까지 작물시험장에서는 ‘새찰쌀보리’, ‘두원찹쌀보리‘, ‘서둔찰보리, ‘진미찹쌀보리’ 등 6품종을 개발했다.

할맥 수율을 높이기 위해 알맹이가 굵은 두줄보리에 쌀보리 유전인자를 넣어 ‘두원찹쌀보리‘를 만들었는가 하면, 쌀과 혼식을 했을 때 쌀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백도가 높은 ‘진미찹쌀보리’를 개발하고, 내한성 인자의 도입으로 쌀보리의 재배 적응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제는 압력 밥솥이 없더라도 밥짓기가 수월하다. 이와같이 보리쌀의 품질은 찰성인자의 도입으로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이제는 찰보리의 인기가 좋아 찰보리값이 쌀값을 상회하고 일부 유사품까지 시중에 나돈다고 한다.
보리 종실은 바깥껍질과 속껍질에 싸여있는 곡실이다. 같은 곡실이라고 하지만 형태상 보리 알맹이는 쌀과는 전혀 다르다. 겉보리는 씨방의 벽에 유착물질이 분비돼 껍질이 종실에 단단하게 붙어있어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다. 다만 쌀보리는 유착물질이 분비되지 않아 성숙이 되면 종실은 쉽게 껍질과 분리돼 쌀과 같은 현미상태가 된다. 또한 보리 종실에는 등쪽 밑 부분에서 위 부분까지 깊게 골이 파여 있어 이를 종구라고 하는데 보리, 밀 등 맥류 종실에는 종구가 발달돼 있다. 종구의 안쪽에는 유관속이 관통하고 있어 양분의 축적과 비대생장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보리를 도정할 때는 종구 부분이 깊숙하기 때문에 보리쌀이 깎인 부분에 세로로 종구가 그대로 남아있게 돼 종구가 없는 쌀의 도정형태와는 형태가 다르다.

작물시험장장은 내친 김에 쌀처럼 골이 없는 보리 품종을 개발하는 게 어떠냐고 독려한다.

현상금은 1,000만원이라나. 이게 바로 동기 유발의 일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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