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씨 심어 쪽저고리, 잇씨 심어 다홍치마…”라는 옛 노랫말처럼 우리 염색전통은 자연스런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농자천하지대본인 농경사회속의 우리 생활은 당연히 농사와 길쌈이 생활의 근본이었고, 염색은 이 농사와 길쌈의 틈을 보아 수시로 물을 들이는 생활이었으리라. 이렇듯 수천년 이어져온 전통염색문화가 화학염료가 들어온지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이 땅에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간혹 물들임에 대해 기억을 갖고 있는 몇몇 분이 있긴 하지만 염색을 해봤거나 어깨너머로 봤던 그 시점에서 너무나 멀리 와버린 지금에 그 방법을 재연해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이 하나라도 소중한 이때에 천연염색 연구모임회를 만들어 활동한지 1년이 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몇해전부터 줄곧 천연염색에 관심이 있던 터였고, 함께 활동할 의사를 비춘 생활개선회원들이 몇 있어 5명의 회원으로 작년 이맘때부터 모임을 꾸렸다.
처음에는 화학염료에 익숙한 터라 직접 물들인 아름다운 색상을 보고도 화학염료의 편리함이라는 편견에 가려 몇번이고 반복 염색하는 작업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입소문으로 회원이 15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물이 빠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염색 재료와 색의 성질에 '나'를 맞춰가는 양보의 미덕을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또한 염색의 재료가 되는 쑥, 오디, 대나무, 소나무 등도 염색만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라 각기 여러 용도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산야에 지천인 '쑥'도 천연염색의 재료이면서 약용으로, 요즘 같은 봄철 영양식으로 두루 쓰였고, 떡갈나무의 도토리는 '도토리묵'으로 소나무는 집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기둥으로 쓰여졌으니 우리의 염색은 목적이 아닌 자연속의 지혜로운 생활이었던 것이다.
몇 차례에 걸쳐 모임을 꾸리면서 대나무나 소나무 같은 될 수 있는 한 우리의 생활과 가까이에 있는 염재를 구해 한가지씩 염색기술을 익히고 색을 내보았다. 그런데 해보면 해볼 수록 완성이 되기보다는 과제가 하나씩 더 늘어났다. 그 첫 과제는 물들이고자 하는 식물의 특성을 다스리는 방법을 얻어 색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염재와 현대생활에 필요한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제를 풀 수 있을 때만이 살아있는 연구모임으로, 농촌여성에겐 보람과 지역사회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산 정상에서의 성취감은 케이블카의 신속함이 비탈진 험한 산길의 노고를 능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양양군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 박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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