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이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신명난 가위질로 동네를 요란하게 했던 엿장수. 과거 마땅한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엿은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아이들은 맛난 엿을 먹기 위해 멀쩡한 냄비를 망가트리고, 아버지 드시던 소주병을 모아 엿과 바꿔 먹곤 했다.
하지만 요즘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수험생을 위한 선물로 시험 날만 잠깐 등장한다.

여기 갈수록 수요가 줄어드는 엿을 가지고 고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이 있어 소개한다. 4대째 전통 재래방법으로 그 옛날 추억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치악산 황골엿 장바우’ 김명자(50)씨. 그녀를 만나 전통의 방법을 고수하며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던 배경을 들어본다.


◆ 600년 역사의 ‘황골엿’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흥향3리 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치악산 황골엿 장바우’
장바우의 대표이자 치악산 황골엿 솜씨 보유자이기도 한 김명자 대표는 4대째 집안의 비법을 전수받아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윗대 할아버지가 쓰던 가마솥에 엿을 만들며 100년 전통의 재래식 황골엿을 생산하고 있다.

황골엿은 운곡 원천석 선생(정용별장을 지낸 열(悅)의 손자이자 종부시령을 지낸 윤적(允迪)의 아들로, 원주원씨의 중시조)이 치악산 줄기인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에 은둔하면서, 차좁쌀로 빚은 술을 가져다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아마도 600년 전부터 이 지역의 토산물이었던 옥수수와 좁쌀로 엿과 술을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재 황골 부락에 거주하는 김동호(66)씨는 “김명자씨는 시부모로부터 황골엿 만드는 기법을 전수 받았으며, 그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께 전수 받았다. 이것으로 볼 때 황골엿과 술이 만들어진 기간은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음이 증명된다”며 4대째 내려오고 있는 황골엿의 전통을 대변했다. 이렇듯 황골엿은 선조들로부터 전수받은 비법 그대로 오랜 역사를 지닌 채 전통엿을 이어가고 있다.

◆ 전통방법에 100% 지역농산물 고집

김 대표는 전통의 맛을 이어가기 위해 전통 재래식기법으로 엿을 생산하고 있다.
3개의 가마솥에 쌀, 옥수수, 엿기름을 넣고 새벽 12시부터 끓이기 시작, 아침 9시까지 계속 저어주며 전통 엿을 만들고 있다.

“큰 주걱과 무거운 가마솥으로 제품을 생산하며 밤낮 쉬지 않고 일해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 기계로 쉽게 만들어 볼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시어머님과 그 윗대 어른들 볼 낯이 없고 맛 역시 전통의 맛이 나지 않아 아직도 이렇게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다.”
전통 재래식기법과 더불어 김 대표는 황골엿의 원료로 100%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다.

황골엿 제조에 이용되는 쌀은 원주, 경기지역의 농협에서 도정되는 쌀을 사용하며 옥수수는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것만을 고집하고 있다. 엿기름 역시 국내산 보리를 구입해 직접 싹을 틔워 사용하고 있으며 땅콩, 참깨 역시 100%로 국산 원료를 사용한다.

“중국산에 비해 국산은 그 값이 배로 비싸다. 또 막상 국산재료를 사용하려 해도 생산되는 양이 많지 않아 구입하기조차 힘들다”며 김씨는 애로점을 토로했다.
“하지만 내 이득만을 생각해 중국산을 이용, 황골엿을 생산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대상은 누구겠는가? 나도 살고 내 이웃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국산만을 고집하게 됐다”며 “전통의 맛을 지키고 우리 고장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국산재료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내비쳤다.

이렇듯 100% 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황골엿은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전통 맛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 긍정적 사고·도전정신이 있었기에…김 대표가 시집와 처음 황골엿을 접할 당시 판매처는 고작 이웃 주민들이었으며 생산량 역시 매우 적었다. 그래도 맛이 좋아 한번 맛본 고객은 재차 엿을 주문해 그럭저럭 판매는 유지됐다. 시어머님과 함께 옥수수 재배를 하며 간간이 만든 황골엿은 1999년 원주시생활개선회원으로 활동했던 김 대표가 원주시농업기술센터의 권유로 농촌여성일감갖기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대량생산체계로 전환됐다. 하지만 2,600만원의 도비로 시작된 사업은 처음부터 난간에 부딪쳤으며 산더미 같은 빚만 안겨줬다.

“사업자등록을 하기까지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이 있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하지만 막상 등록이 다 끝난 후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생산된 엿을 어떤 방법으로 판매해야 하는지 또 판매처 확보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김 대표는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도비로 시작된 사업이라 처음에는 마냥 좋아 시작했지만 운영을 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다. 엿 만드는 것에만 자신 있었지 유통이며 판매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엿에 가슴만 졸이고 있었다.”
결국 비싼 국산 재료만을 고집하던 김 대표는 생산한 황골엿의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해 갈수록 빚만 지게 됐다.

“하지만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차피 시작한 사업 어디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맘을 다잡았다. 우선 생활개선회 활동을 통해 대외적으로 황골엿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황골엿이 강원도 토속식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행사와 교육을 찾아다녔다. 직접 생산한 엿을 사람들에게 맛보게 하고, 제품을 들고 유통업체를 직접 방문해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강원도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전시 판매장에 제품이 진열됐으며, 2001년 우체국 판매도 시작하게 됐다. 또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 및 원주휴게소 등에 고정판매처를 확보하게 됐다. 더불어 2003년에 1억원의 시비를 지원받게 돼 그 동안의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힘들게 정성들여 만든 황골엿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과 이대로 포기하면 사업을 지원해준 농업기술센터와 날 믿고 옆에서 힘이 되어준 남편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도전정신으로 제품을 생산했다”며 “오늘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라 본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 “황골엿 기술 누구에든 기꺼이 전수”

지난해 황골엿 매출액은 7천만원, 갈수록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어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된 상태지만 김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일감갖기사업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제대로 된 제품을 인정받지 못할 때였다.

100% 국산 재료를 이용해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증명할 길이 없었다. 만약 품질을 인정해 주며 유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공간만 있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일감갖기사업장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생활개선회원들의 일감갖기 유통사업장’ 개설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기술을 전수해 제2의 황골엿이 탄생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할 것”임을 밝혔다. 더불어 일감갖기사업을 하고 있는 전국의 생활개선회원들과 연대의 장을 마련해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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