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농업인·시인자동차가 꽤 속을 썩인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써 놓고 보니 틀린 말인 것 같습니다. 고장 나지 않아야 할 새 차가 고장 났다면 이 말이 맞기도 하겠지만 제 자동차는 세상에 나온 지 만으로 21년 5개월 됐으니 사람으로 치면 100살을 꼴깍 채운, 숨넘어가기 직전의 차입니다. 그러니 차 입장에서 보면 조용히 영면에 들지 못하게
박 형 진 농업인·시인지난 일요일엔 모내기를 했습니다. 참 우여곡절을 겪은 모라 끝내고 나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열흘 정도는 더 늦게 심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일찍 심게 되었습니다. 항상 남들보다 맨 늦게 심다시피 했는데 이번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이른 것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것과 모판흙에
초벌 로터리 해놓으려고 논에 물 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농협에 들러 고추밭 비닐을 한통 사고 미장원에 들렀습니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왠지 머리라도 산뜻하게 깎으면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주제에 몇 년 전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야말로 소갈머리 없는 사람으로 불리기 십상인데, 거기에 흰머리까지 반나마 섞여서
박형진 농업인·시인몸과 마음이 몹시 힘든 때를 견디고 있는 중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하기 싫다 해도 때 되었으니 못자리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들 다 모내기해서 벼가 푸르게 자라고 또 이삭이 패고 여무는데 제 논만 빈 채로 있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밭농사는 못 믿는다 해도 논의 쌀농사는 어떻게든 팔기는
박 형 진 농업인·시인온 천지에 초록색 기운이 넘실대는 오월입니다. 꽃 지고 난 자리마다 연둣빛 잎들이 어린아이 손바닥처럼 피어나더니 어느새 온산을 뒤덮었습니다. 집 뒤로 난 산길을 따라 발을 옮기면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이내 녹음 속에 파묻혀 버리는 듯합니다. 주말과 휴일이 되면 산과 냇가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넓적한 바위나 비록 차
비염의 계절이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비염이 그 무슨 반가운 것이나 되는 듯합니다. 그럴 턱이 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지요. 새벽에 잠자리에서 눈을 떴는데 콧속이 여느 때와는 달리 좀 답답하며 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불을 들썩이며 한 번 뒤척이자 에에에엣취! 또 에에에엣취! 연달아 재채기가 터지는군요. 올해도 어김없이 올 것이 온 것입니다.
박 형 진 농업인·시인날씨가 갑자기 여름이 온 것처럼 사나흘 덥습니다. 그동안 일교차는 많았어도 날씨가 이렇게까지 갑작스럽진 않았는데 이건 너무 심하다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러니 밭둑의 풀들도 하루사이에 대궁이 다 무릎까지 자랐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금방 또 등에 예초기 둘러매고 풀 깎는 일에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습니다.지나다니며 보면 들녘은
종일 자리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많이 마신 탓입니다. 어머니 기일이었지요. 모처럼 형제들이 모여 앉으니 자연스레 제사상 차려놓고 술판이 벌어집니다. 저는 봄이면 찾아오는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술 참은 지가 스무날이 넘었습니다만, 이 날은 안 먹을 재간이 없습니다. 아니 그냥 이날 하루만은 맘 놓고 먹기로 작정을 하지요. 그래야 신간이
내일 비가 많이 온다더니 그 때문인지 저녁때부터 바람이 거세고 하늘에 검은 구름장이 떠다닙니다. 오늘은 저녁나절은 쉬려 맘먹고 아예 씻고 점심 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두 시가 넘도록 저는 그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딴 때에는 한 삼십 분정도 낮잠을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해져서 일어나기가 참 수월했지요. 하지만 오늘은 몸이 찌뿌듯하고 무거워서 기분까지 말이 아닙
더덕을 심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덕 씨앗을 밭에 뿌렸습니다. 거름 뿌려서 한 번 갈아엎어 놓은 땅을 다시 한 번 더 갈아서 쇠스랑으로 고르고 비닐을 씌운 다음입니다. 더덕 종자는 작년 가을에 구입해 둔 것입니다. 변산면에서 유일하게 더덕 농사를 지으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데 작년 가을에 마른 더덕순 밭에서 종자를 따시기에 1kg을 부탁했더니
다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저와 제 아내는 아침을 일찍 먹었습니다. 내외 둘만 있으므로 평소에는 일곱 시 쯤에 일어나서 여덟 시 반 무렵에 아침을 먹습니다. 그 시간대에 TV에 즐겨보는 휴먼 다큐가 방송되기도 해서, TV에 눈 대고 웃고 참견하면서 밥을 먹는 게 겨우내 이어져 왔다시피 했는데 오늘은 조금 서둘렀습니다. 커피도 저만 얼른 한잔 타 마셨습니
꽃샘추위가 며칠을 두고 손바닥두께로 얼음을 얼리면서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바람만은 조금 약해진 듯합니다. 춘분 무렵의 날씨가 이러니 9월의 추분 즈음에도 그럴까요? 지구의 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접어들었다고도 하고, 따라서 앞으로 날씨는 겨울과 여름만 있다고들 하는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지
봄비가 삼일이나 지짐거리며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저것도 비라고 오나 싶은 생각이 들고 저러다 또 말겠지 여겨졌는데 그것이 그치지 않고 이틀 오고 사흘째 와서 겨우내 말라있던 집 옆의 냇물이 흐릅니다. 마음 같아선 더 많이 와서 저수지 마다 꽉꽉 채우고 넘쳐서 소리치며 흘렀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만큼이라도 정말 다행입니다. 그사이 양파 밭풀은 산더미 같이 자라서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양파 밭 웃거름을 뿌렸습니다. 땅은 아직도 밤낮으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자칫 때를 놓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양파는 웃거름을 조금 일찍, 그리고 충분히 주어서 날이 더워지기 전에 우죽을 튼튼히 키워놓아야 알이 굵어지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좋은 유기질 웃거름을 좀 나우
날이 몹시 춥습니다. 많지는 않으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속으로 많이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녘에 추녀 떨어지는 몇 방울 소리를 들었을 뿐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후북허니 왔으면 날이 이렇게 춥지는 않겠지요. 비 되지 못한 구름이 지나다 눈이 될까 걱정됩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번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양파 마늘밭에 웃
박 형 진 농업인·시인음력 2월 초하룻날이 엊그제입니다. 어렸을 때 이날을 ‘콩 볶아 먹는 날’ 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날이 돌아오면 거의 집집마다 콩을 볶았으니까요. 그렇게 콩을 볶아야 집에서 사내기(노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지요. 예전에는 모두 초가집뿐이어서 지붕의 축축하니 썩은 ‘썩은새&r
화장실을 다시 지었습니다. 이미 한 달 가까이 지난 이야기를 불러내 다시 쓰는 건 그 일이 제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기록되어야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불에 타버린 소나무 두 그루부터 먼저 베었습니다. 불탄 화장실의 두 기둥을 지지해주고 있던 덕분에 함께 타버린 소나무는 베어놓고 보니 나이테의 수가 서른다섯 개씩이었습니다. 촘촘하고도 곧게
불에 탄 화장실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네 기둥만 타다 만 채 검게 서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화장실이었던 흔적이 없고 물을 뒤집어쓴 잔재들이 밤새 얼어붙어 군데군데 얼음 무더기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나무에 박힌 못들이 사정없이 끝을 세워두고 있어 작업화가 아니면 접근하기도 어렵겠고, 소나무 숲속이라 햇빛이 들지 않아 얼음이 언제 녹을지도 알
설 지나고 나자 제게는 또 어김없이 그 후유증이란 게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을 무슨 증후군이라고 하던데요. TV에서 자주 나오는 예의 그 내용, 며느리가 시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절 일에 부대껴서도 아니고 돈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돈 때문일 턱도 없는, 그러나 저만 겪는 일은 아닐게 분명한 그 무엇이 찾아온 것입니다. 명절
졸음을 참으며 저녁 9시뉴스를 겨우 다 보고 제방에 건너와 잠자리에 누워 막 잠이 들려는 참이었습니다. 아들놈이 오줌을 누려고 그러는지 대청으로 통하는 안방 뒷문 여닫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어서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뒤 안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웬 불· 하며 조금은 의아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