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농업인·시인돌아가신지 삼 년째인 둘째 누님의 제사여서 전남 순천에 사는 조카 집에 다녀왔습니다. 가지 못할만한 일이 있었는데 누님 제사보다 큰일이랴 싶어 떨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큰형수님과 둘째 형수님을 모시고 가는 형님의 차에 좁으나마 함께 갈수도 있었지만 저는 일부러 버스를 탔습니다. 살아생전 아버지 제사를 보러 오느라 누님이 타고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노라니 손이 시린데 밤새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는지 바삭거리는 나뭇잎들이 마당 여기저기 휩쓸려 있습니다. 그새 비가 또 한 차례 와서 땅이 많이 젖어있지만 오늘은 서둘러 고구마를 캡니다. 잠깐 농협에 볼일이 생겨 아내와 함께 나갔다 와야 하는데 아내가 아침 설거지를 하고 방안에서 외출준비를 하는 동안에
박 형 진 농업인·시인저희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있는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에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1, 2학년으로 이루어진 문학동아리를 지도하는데 학생들과 함께 찾아와도 좋겠냐는 전화였습니다. 제 사정이 허락되면 두 시간 정도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지요. 일이 바빠도 그런 시간이라면 기꺼이 응하는데 바쁘지 않은데 거
박 형 진 농업인·시인구럭을 쓰고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적게 온다는 가을비가 우산을 써야 할 만큼 많이 왔습니다. 그새 한 달포 정도 비가 오지 않다가 온 비라 해갈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벼 베는 일도 거의 다 끝나가서 이번 비는 추수에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가을비 한번은 내복 한 벌이라더니 비 그치고 나자 추위도 찾아왔습니다. 바람이
박 형 진 농업인·시인가을의 한 중간입니다. 일교차 큰 맑은 날이 한 달가량 계속 됩니다. 이른 아침엔 손이 시리게 싸늘하다가도 아침 먹고 조금 지나면 이내 따뜻해져서 일하기 좋습니다. 한낮으로는 덥기까지 하고요. 바쁠 것도 별로 없는 농사지만 엊그저께 나락 베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갓집니다. 바람 탓에 쭉정이가 많이 생겨서 거두어 놓고 보니
박 형 진 농업인·시인온종일 집안 여기저기를 서성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보는데도 망막에 영상만 스쳐 지나갈 뿐 어떤 내용인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연결되어 기억에 저장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버릇처럼 옆에 놓은 라디오를 틉니다. 요즈음 밤으로 즐겨 듣는 것이 에프엠(FM) 방송인데 낮에도 틀어서 70~8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듣곤 했습니
참 여러 날을 두고 TV 뉴스와 각종 프로그램들은 태풍 때문에 많이 숨 가빴습니다.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태풍 세 개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수확을 앞둔 때이고 추석이 다가오는 때라 여기저기 차마 눈을 떼기 어려운 가슴 아픈 일들이 많기도 하더군요. 저는 평소에도 뉴스는 빼지 않고 보지만 태풍이 온다 하면 저 아
박 형 진 농업인·시인김장배추 심고 마늘 심으려고 어제는 오전 한나절 경운기로 밭을 갈았습니다. 마늘이야 추석 지나고 심어도 괜찮지만 올해는 추석이 좀 늦은 까닭에 전에 심어야 될 것 같습니다. 풀이 많이 난 밭이라 이번에 한 번 갈아엎어놨다가 심을 무렵에 다시 한 번 갈 생각입니다. 김장채소는 또 비가 온다기에 거름뿌리고 갈아놨다가 비온 후
집을 지은 지가 15년이 다 돼가니 손봐야 할 낡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런 곳이 이번 바람에 죄다 부서지고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나중에 할 셈치고 우선 지붕과 차양부터 고치기로 했습니다. 용마름 날아간 것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고 있는데 집을 둘러 보러 오셨던 둘째 형님이 예전에 고물상에서 사다놓은 용마름이 있다고 가져다 쓰라고 하셨습니
박형진 농업인·시인태풍이 왔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 중 다섯 번째로 강한 것이라 했습니다. 또 서해를 따라 올라가므로 그 오른쪽인 전남북과 충청서해안이 피해가 더 크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태풍이 제주도를 할퀴기 시작한 때부터 저 사는 이곳도 바람이 거세져서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한
박 형 진 농업인·시인가을장마가 참 심합니다. 여름 더위가 채 숙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몽땅 몽땅 퍼부어서 난리도 아닙니다. 국지성 게릴라성 호우라고 합니다. 국지성이란 말도 낯설고 게릴라성이란 말도 마뜩찮습니다. 국지성이란 말은 전국성이란 말의 반대로 쓰는 듯하고 게릴라성이라는 것은 정규성과는 달리 여기저기 예측할 수 없
박형진 농업인·시인박 형 진 농업인·시인밭둑 아래 개울가에 빈 땅이 조금 있어서 엄나무와 옻나무 감나무 따위를 심어 놨는데 안 돌아본 사이에 칡덩굴이 에워싸서 올해 심은 어린 나무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습니다. 처음 칡덩굴이 감고 오르려 할 때는 며칠만 더 놔뒀다 베도 괜찮을 성 싶었는데 다른 일에 마음이 팔린 며칠사이에 참 무
대서와 중복을 지나면서 올 여름의 폭염이 절정에 이른 것 같습니다. 휴가철인지라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과 일요일에는 집 앞 도로에 차량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아니 도로위에 차들이 그냥 서 있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려는 차와 나오는 차들이 서로 뒤엉켜서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것도 다반사인데 저런 고생을 하면서도 이 더위에
박 형 진 농업인·시인모래땅 밭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데 그곳에 뿌려놓은 들깨 모종이 다 죽었다며 저희 집에 종자를 얻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오신 게 아니고 댁에서 기르는 오리 한 마리를 가지고 오신 겁니다. 마대 자루에 담긴 것을 차에서 내려서 마당에 툭하고 던지시기에 뭐냐 물으니 “오리여! 잡아먹어” 이러지 않
박 형 진 농업인·시인오뉴월 염천이라더니 정말 대단한 더위입니다. 장마가 북상했을 때는 사흘 도리로 비가 와서 언제 맑은 하늘이 드러날까 했는데 구름이 걷히자 이제 견뎌보라는 듯 태양이 날마다 불볕더위를 쏟아냅니다. 아침해가 산등성이를 넘어 오시기 전이나 서산머리에 들기 전에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 해도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융단의 섬모
박 형 진 농업인·시인일주일 동안, 네 차례 손님을 겪느라 몸이 조금 지쳤습니다. 손님 중에는 연락 없이 먼 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분이 두 팀, 나머지 두 팀은 오래전부터 약속을 하고 오신 분들이었습니다.처음 손님은 여자분 둘이서 오셨는데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남짓 되는 거리에 사시는 분들로, 저의 셈법으로는 아주 먼 곳이지만 이분들은
박 형 진 농업인·시인긴 가뭄 끝에 비가 오니 대지가 갑자기 생기를 띱니다.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한다면, 비가 와서 뿌리로 물이 스며들기도 전에 식물들은 늘어졌던 이파리들을 펼칠 대로 다 펼쳐서 온몸으로 비를 받아들였습니다. 식물들의 향연이 빗방울이 떨어지면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것은 어찌 보면 대자연이 지어내는 한편의 웅장한 교향곡이며 서사시
박 형 진 농업인·시인새벽에 논에 피사리를 하러 갔다가 열시쯤 돌아오는데 갈 때는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날이 너무 가무니 밭에서는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일주일전만 해도 양파 캐낸 밭에 뒷정리 하는 사람들, 고추밭에 물주는 사람들이 한낮에도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양파 마늘 캐낸 밭은 하얀 채 벌거벗겨
박 형 진 농업인·시인어젯밤 맘을 먹기는 오늘 새벽 눈 벌어지자말자 일어나서 논에 피사리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이 다섯 시쯤 되겠지요. 챙기고 논에 가면 다섯 시 반, 그때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열시 반까지만 일하면 한나절 일은 하겠다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침도 먹지 않고 가서 그
가문 날이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양파 거두고 나서 풀 때문에 경운기로 밭을 갈아엎었는데 흙이 뗏장처럼 일어났습니다. 묵혀 두었던 밭도 가뭄에도 풀은 잘 자라 두 번째 갈아엎었는데 트랙터 로터리를 대지 않으려는 한 여름작물을 심으려면 며칠 안으로 한 번 더 갈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 밭은 고추와 더덕 몇 두둑을 빼고 거의 다 빈 밭입니다.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