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량이 무사를 불렀다. “이보시오, 동행어른 얼른 가야지요.” 경어를 썼다. 일찍 상주 병영 절도사는 아는 인물이었다. 일부로 농암을 거쳐 항백, 낙동을 돌아 상주관아 고을로 들어섰다.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깜짝 놀란 절도사는 준량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마치 윤형영 일파에 눈에 벗어나서 낙향 아니 멀리 좌천되어 가는 몰골이었다. 무사
관사가 지급되고 노비가 시중드는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혼인 후 처음으로 처가에서 분가를 했다. 준량의 처 이 씨는 얼마 전 둘째딸을 낳았다. 산후로 얼굴이 푸석했지만 분가를 해서 살림을 준비하느라 고된 여러 날을 보내고 있었다. 준량은 주상 명종 임금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황준량은 들어라 그대를 암행어사로 임명하니 도성 땅을 지나서 읽
준량은 옳고 그름의 판단력은 누구보다 정확하다고 여겼는데 성균관에 직책을 얻고부터 판단의 기준이 흐려져 갔다. 관직이 높아갈수록 작은 결정도 기준을 정하기 어려웠다. 나름대로 정도를 세우면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어느 덧 준량은 스스로 교육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성균관 학생이면 이미 배울 만큼 배운 자들이었다. 유교 이념도 근본도 줄줄이 외우고 있었고 중국
성균관 유생들의 눈동자가 살아 움직였다. 유생들 신고식도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유생 입학은 계절 별로 정해진 것이 없다. 대개 소과나 진사시험에 합격하면 성균관 입학이 허용되었다. 삼년에 한 번 있는 대과 준비를 위해 잠시의 틈도 없었다. 여유 있는 집안은 휴직하고 명산을 유람하지만 시골에서 올라 온 유생들은 쉴 틈 없이 공부에 열중해야 했다. 도성 유생
어느 날 풍기군수가 준량을 불렀다. 군수가 준량 앞에 서찰을 건네어 주었다. 성균관 인장이 찍힌 봉투속의 편지를 읽는 준량의 표정이 어두웠다. 바깥을 내다보니 벌써 진달래꽃들이 동헌 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양을 내려 온 지 여러 달, 금계천에 한가로이 노닐 던 꿈이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군수가 입을 열었다. “편지를 읽고 있는 자네의 안
준량의 소문은 순식간에 장안에 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과거 낙제가 아니라 출석 낙제가 더 무서웠다. 더군다나 주상의 칭찬이 있자 대놓고 준량을 힐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훗날 몇 몇의 관리들이 준량을 끝내 비방하는 기회를 주고 말았다. 준량은 학유에서 학정으로 승진했다. 정 8품 업무 총괄이다. 한 통의 서신이 준량 앞으로 왔다. 풍기군수 주세봉이 보낸
황준량은 성균관에 첫 직책을 얻었다. 그것도 학생 선발 감독 및 유생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성균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다. 이황의 맏 제자로 멀리 영남지역 학자로서 가슴속 깊이 묻어나는 강인한 선비의 자부심이 성균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준량은 우선 성균관에 적을 둔 과거급제자 부터 파악했다. 관직을 받고 지방에 내려가지 않고 녹을 받는 20여명을 상부에
등장인물 : 황준량. 토정 이지함. 퇴계 이황. 백의 제상 이지번. 농암 이현보.황준량은 즐거운 마음으로 도성을 나서고 있었다.역 관에서 타고 갈 말을 제공하고 한 명의 수행원을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매 역마다 필요한 것을 지원받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단번에 신분이 급상승하는, 그래서 선비들이 과거를 꿈꾸며 염원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황
등장인물 : 황준량, 토정 이지함, 퇴계 이황, 백의 제상 이지번, 농암 이현보.“어서 오게. 내가 처가살이하니 옹색하기 그지없네.”황준량은 반갑게 지함을 맞이한다. 동년배로서 가끔씩 어울리는 사이다. 요즘 통 얼굴을 못보다 오늘 찾아왔다. 그는 사람의 운을 공부한다고 몇 년 전부터 전국을 쏘다니고 있다. 그의 집안에서는 잡학에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