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관찰사에 신령 이방이 엎드려 있었다. 관찰사가 직접 문초를 하고 있었다.근신하라고 했는데 사직서를 올려?” 관찰사는 괘심하기 짝이 없었다. 사령을 통해 언질을 주었고 성주 목에서도 반대를 했는데 기어이 큰일을 저지른 현령을 조정에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현의 관리들을 모두 쫓아내고 홀로 채무문서를 불태운 황준량의 무모하리만큼 우직한 행동이
사령과 판관이 떠나자 준량은 이방을 비롯해서 육방의 관리들을 동원해서 채무문서를 살폈다. 당년의 채무는 제하고 오래된 문서부터 하나하나 조사해 나갔다. 실로 방대한 내용이었다. 전체 문서 중 칠할 정도가 이행 불가한 문서였다. 준량은 이방을 시켜서 갑 을 병으로 나누어서 처리했다. 준량이 물었다. “갑이 몇 명이요·” &l
성주 목사는 난처했다. 신령 현감이 보낸 문서는 목사로서도 처리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삼권을 쥔 목사지만 나라 부채를 탕감해 달라는 것은 무리였다. 책임진 고을을 잘 다스려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잘한 일이지만 칠곡처럼 목사가 판관을 보내 현감으로 임명하는 속현도 아니고 조정에서 직접 임명하는 직현으로 목사가 좌지우지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원만한 업무
풍기 고향에서 늘 보던 닥나무가 고향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관청 뒤 양지바른 산자락에 뽕나무가 무성했다. 오래 된 고을이라 비단 짜는 기술은 상당했다. 성주목 관아에는 신령이 비단 산지였다. 관리들은 신령현에 맞지 않은 흥청거림이 많았다. 준량은 지난 해 부임부터 검소함을 요구하면서 일식 삼찬의 식탁부터 실천했고 두 해째인 올해부터 관청에 재물
지난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새 봄이 왔지만 마소가 전답을 짓밟는 곳이 없어 백성들의 시름이 놓였다. 신령 장날이 왔다. 이곳저곳에서 귀중한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촌마다 부여된 공납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북촌 마을과 서쪽 팔공산자락 향촌이었다. 신령의 공납품 중 웅담이 여덟 냥이고 사향이 다섯 냥이면 상당한 양이었다. 자연
순간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들이 가시고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적은 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년 봄이 되기 전에 조그마한 집이라도 세웠으면 합니다.” 준량이 재차 말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자제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이방이 먹과 붓을 챙겨 반상 옆에 놓고는 한
여름이 지나자 하곡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먼저 세곡미를 등짐으로 지고 와서 납부했다. 2천여결의 농토 중 정식으로 해마다 납부하는 토지는 절반이 안 되었다. 나라 토지와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는 양반 관리 등을 빼고 나면 실제 그 절반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이번 하곡미가 천여석이 걷혔다. 평민들이 앞 다투어 낸 것이었다. 고을 백
드디어 관리가 크게 징을 쳤다. 90보 노인은 달렸지만 노인이라 워낙 느렸다. 판서댁 마름은 진 것이 뻔하므로 어기적 걸었다. 여기저기서 야유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이 100보에 이르자 또 한번 징을 쳤다. 마름은 겨우 몇 보를 어기적 걸었을 뿐이었다. 준량은 서류를 응시하고 있었다. 김가네 밭은 열 섬의 곡식이 나오는 상답이었다. 매년 곡식을
“향리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 준량의 물음에 이방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략 한 둘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글을 가르칠 방법이 없겠소?” 준량이 알면서도 재차 묻자 형방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글을 배우려고 하겠습니까?”관청에 관리나 향
준량은 장기적으로 해야 할 사항은 뒤로 미루고 우선 시급한 고발내용부터 간추리도록 명하면서 직접 챙겨 재판하기로 했다. 그 중 곡식을 뜯기고 나락이 절반도 수확할 수 없는 백성들로부터 재판을 하기로 했다. 고발한자와 고발당한 자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한 날 한시에 재판을 한다고 하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준량은 구름처럼 몰린 관청
보리싹이 들판을 덮고 있었다. 제법 풍년이라 준량은 마음이 가벼웠다. 이방을 시켜서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조세를 점검시키고 한편으로는 매년 춘곤기에 구흘미로 대부곡을 따로 정리하여 조금이라도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준량은 관솔들과 고을을 한 바퀴 돌며 봄철 바쁜 농촌을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그때 난데없이 나타난 소가 보리싹을 뜯어 먹고 있었다. 젊
업무에 임하니 난해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전임 현감의 인수인계도 문제였다. 수십년 전 외조부가 신령현감으로 다녀가면서 조정의 과거급제 후 인사 차 하신 말씀이 신령에는 산물이 풍부하고 영남으로 가는 길목의 고을로서 현으로 치면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라 늘 자랑스럽게 처음 지방 수령의 뜻을 펼 수 있었던 곳이다 여러 번 들었던 곳이지만 막상
팔공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득한 뜰에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들에는 벌써 보리 싹이 크고 있었다. 준량은 식솔들을 데리고 관아에 짐을 풀었다. 판서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준량을 불러 위로했다. 몇 년 동안 3판의 좌랑을 역임한 준량이 가진 것 이라고는 말등짐 한 필이 전부라는 것을 알고 전별금을 주었다. 아마 승지로부터 받아온 것이 분명했다
본가도 없고 끼니 걱정에 남산 밑 관창에는 목재가 쌓이기 시작했다. 막강한 권력의 윤대감 집도 헐리어 반납하자 몰래 몰래 가져간 관리들이 앞 다투어 반납하고 있었다. 문정왕후가 명종을 닦달하고 나섰다. “어미를 생각해서라도 외숙집은 나둬야 하는 것이 아니요. 더군다나 짓던 집도 허물어 간단 말이요.” 사헌부 대사헌이 명했다. &ldqu
황준량은 풍기 금계천을 거닐고 있었다. 아침, 저녁 아버지의 묘소를 지키고 있었다.매우 한가로웠지만 근 3년간의 긴 세월이었다. 조정에서도 준량에 대한 비난이 수그러들었다. 벗인 허엽이 인사 차 들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초라한 움막에는 간단한 식기들과 부모 초상을 놓고 제문을 지어 읽고 효를 다했다. 허엽이 한 마디 했다. “유능한 관리
그래서 목사는 4년간 임기가 있지만 수시로 교체되고 있었다. 그들의 취임과 이임은 곧 축하금과 전별금으로 국고를 낭비하고 지방 백성들의 수탈로 이어졌다. 준량은 이미 조정 관리들의 눈 밖에 나고 있었다. 그것은 지방 감찰에서 부정한 관리들이 쫓겨나면서 그 뒤를 봐 주던 대신들 일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더욱 심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가기밀 및
준량은 유래 없는 형조를 거쳐 병조 좌랑이 되었다. 좌랑은 정 6품의 관직이지만 군에 관련된 사무를 총괄하는 요직이었다. 정랑은 병조의 인사 및 행정업무를 맡고 좌랑은 관련기관의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군수물자를 빼돌려 임의로 사용하는 관리들이 너무 많았다. 정작 지방 병ㆍ 수영 물자를 마치 자기 집 물건 쓰 듯 마구 사용했다. 심지어는 귀중한 철
준량은 또 한번 어사로 임명됐다. 이번에는 공개적인 감찰어사였다. 도승지가 준량을 따로 불렀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지난 번 자신을 수행한 무사와 종자가 있었다.도승지는 현 비서실장에 해당된다. 정3품에 이조 참판을 겸하고 있었다.조촐한 술상이 별채에 마련됐다. 도승지가 입을 열었다.“지난 번 세 분이 다 고생 많았소. 황 어사만 모르고 있었는데
무사와 종자는 식솔과 노비로 위장했다. 제주에 온지 십 여일 만에 뭍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강진 병영 이였다. 날씨좋은 날을 택했는지 배는 순조로운 항해였다. 조선시대에 가장 먼 뱃길은 제주목 이었다. 배외에는 길이 없었다. 배 3척이 동시 떠났는데 그중 한 배는 사람이었고 2편은 목사가 전별금으로 얻어가는 것이었다. 전별금은 항시 어느 관
장마가 늦어 날씨가 좋았다. 이미 도성을 떠난 지 두 달이 되었다. 여수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전라 좌수사를 뵈었다. 일찍이 명성을 듣고 자신이 제주관리로 발령을 받아 이곳에 며칠 묵는다고 아뢰었다. 전라 좌수사는 준량의 임무를 몰랐다. 단지 한양에서 이름난 성균관 교수라는 것만 알았다. 너무 과격하여 제주지역으로 발령 아닌 귀양으로 생각하고 측은하게 위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