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참 좋은 날입니다. 쉬지근한 세대여서 그런지 양력12월31일 보다는 음력섣달그믐 이라야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기분이 납니다. 물론 금전 정리 따위의 형식적 마무리는 양력으로 합니다만 마음의 마무리는 음력인 듯합니다. 설날 아침의 차례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장을 보아다가 차례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경건한 마음이 중심에 놓여야 하는 것이어서 자세
달력을 보니 이번 사리에 바닷물이 무려 나흘 동안이나 많이 빠진다고 나와 있군요. 저는 사실 달력보고 알았다기보다는 갯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늦게 사 달력을 들여다봤고요.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의 이런 날을 참 많이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나흘씩, 그것도 마이너스지점 즉 평균값의 훨씬 아래까지 물이 빠진다니
1월도 중순 무렵에서야 겨울다운 날이 이어집니다. 겨울치고는 드물게 소한의 추위가 찾아오고 그 추위가 일주일가량 계속되니 사방이 조용하게 얼어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윗날은 맑고 좋아서 안에 있기란 좀 답답하군요. 하여 나무나 하자고 챙기고 밖에 나왔습니다. 이따가 몸 움직이면 이내 더워져서 벗어버릴 것이지만 두툼한 점퍼에 모자 장화 따위로 우선은 중무장을
새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니 밤새 눈이 많이도 내려서 천지가 온통 하얀 나라가 되었습니다. 서설! 새해 첫날이 이렇게 눈으로 덮인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이군요. 요 며칠 날이 맑지는 않으나 참 포근했는데 갑자기 추워지면서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죄다 눈으로 내렸나 봅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눈은 마치 작년에 못다 내린 것을 쏟아버리기라도
눈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일기예보로는 이쪽 지방에 10cm가량의 눈이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지붕위에 쌓인 것을 가늠해보니 한 뼘이 넘습니다. 약25cm정도 왔다는 이야기지요. 여기에 하늘은 눈구름으로 덮여있고 계속해서 쏟아 부으니 얼마나 더 쌓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궂은 날씨는 얼마 전부터 계속돼왔고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은 날마다 오다시
밤새 참 순한 것이 내렸습니다. 첫눈입니다. 첫눈치고는 많이 왔군요. 수돗가의 함석 지붕위에 쌓인 것을 보니 한 뼘 가량이나 됩니다. TV가 전하는 말로는 이곳 지방의 적설량이 26.7cm라 합니다. 내린 눈도 물기가 많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렇게 날씨가 푸근한 탓이겠지요. 이 많은 눈을 추운 바람이 몰고 왔다면 얼마나 을씨년스러웠을까요. 마루며 토방
벼 건조시설에서 말린 채 보관해오던 벼를 실어내다가 방아를 찧었습니다. 해마다 저희 쌀을 사주시는 분들에게 보내드리기 위해서 좀 더 서둘렀어야 하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다른 일들이 겹쳐서 이제야 방아를 찧은 것입니다. 20kg 단위로 현미는 스물다섯포 쯤 뽑고 백미는 쌀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인 8~9분도 정도로 빼는데, 아 글쎄 합해서 올해는 꼭 9kg이
여느 해보다도 단풍이 더 곱게 물드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산이나 들에 크게 생채기를 낸 태풍이 없었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전체적으로 색깔이 짙어지며 형형색색입니다. 먼 산꼭대기쯤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단풍을 보며 ‘저게 언제 예까지 오누?’ 생각했는데 일주일 남짓 사이, 어느새 집 뒤까지 다가왔습니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많이 벌어지
들판에 벼 베는 일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 내린 좋은 비 때문에 밭일이 바빠졌습니다. 올해는 겨울이 빨리 온다는 소리가 있어서인지 양파 심는 일을 부쩍 서두르는듯한데, 다른 해 같으면 시월 말부터 십일월 초까지 심던 것을 한 열흘 빠르지 않나싶군요. 저도 저번에 갈아놓은 밭에 거름을 뿌리고 조카에게 로타리를 부탁했습니다. 한번 갈아뒀던 밭이라 저번 비에 땅
아침저녁의 일교차가 15도 이상 벌어지는 날이 며칠 이어지자 산과 들은 비로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왔다는 듯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합니다. 먼 산마루의 능선과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단풍도 아침저녁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냥 색이 점점이 붉어지고 집 옆의 붉나무, 옻나무 따위와 느티나무들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물들어가는군요. 특히 감나무의 감들이 이젠
들깨를 벱니다. 잎을 따서 장아찌를 담가놓은 지가 엊그제인데 어느 순간 그 잎이 누우렇게 되고 씨방들이 갈색으로 말라가서 벨 때가 되었습니다. 수돗가에서 왜낫을 잘 갈아서 밑창이 단단한 작업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들깨 밭으로 갑니다. 길게 세 줄을 심었어도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라, 노는 양인 셈이어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목청 것 부르는 것은 아니어도
박 형 진 시인의감성편지 몸이 아픈데도 일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하루나 이틀정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쉬는 것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좀 푸욱 쉬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닭에 인삼이나 대여섯 뿌리 집어넣어서 고아 뜯으며 일 걱정 없이 쉬어보고 싶습니다. 비록 TV에서겠지만 재미난 영화도 하나 보고 생각지도 않은 문학상 같은 것에
추석이 일찍 든 탓에 추석이 지났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더니 간밤에 비가 한 번 내리자 날씨가 맑고 서늘해져 이제야 비로소 가을이 온 듯 한 느낌이 듭니다. 다른 때 같으면 추석 전에 김장배추 옮겨심기며 양파 모판설치며 부지런한 사람들은 마늘까지 다 심어버리는데, 추석 지난 지금도 이런 일들은 한창인 듯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도 많이 벌어져서 방에 불을
장마 때보다도 더 비가 잦고 많이 오니 흔히 이야기 하듯 가을장마입니다. 여름장마 때 비가 적었던 탓에 전국의 저수지 물이 반도 차지 않았다 하고, 심지어 어떤 곳들은 먹는 물마저 부족하다 하니 늦게라도 이렇게 비가 많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비 때문에 밭작물들을 많이 망치게도 됐습니다. 우선 비닐하우스에 고추 따 널은 것을 말릴 수가 없고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됐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태풍이 몰아온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전부터 약속해둔 중요한 일이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에 여기저기 비바람 단속을 해놓고 식구에게는 이것저것 당부를 해댔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꾸만 뒤돌아 봐지는데 제 성격을 잘 아는 아내인지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라고 오히려 등을
오후 세 시가 넘도록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지요. 마치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 대신 술을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마음 놓고 마셔댔으니 오늘 성할 리가 없습니다. 제 사는 이곳 면지역에는 제가 몸담고 있으면서 책임을 맡고 있는 풍물단체가 하나 있는데, 그 회원 삼십여 명 중에 올해 환갑이 되는 분들이 일곱
모내기 한지 삼 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김매기를 시작했습니다. 키가 많이 자라지 않은 모를 심은 까닭에 물을 깊게 대지 못해서 군데군데 등이 난 곳마다 새까맣게 풀이 올라왔습니다. 풀 중에는 단연 피가 많습니다. 싹이 튼 시기를 가늠해보면 나락보다도 한 달이나 늦었으련만 벌써 피는 벼와 똑같이 컸습니다. 다른 풀도 마찬가지지요. 이러니 저 피를 어릴 때부터
박형진 시인의감성편지 모 심어 놓고 나니 마음이 한갓집니다. 기계가 다 해버리고 사람이 정작 하는 일은 자질구레한 몇 가지 일뿐인 것이 모내기인데도 모를 심지 않으면 다른 일의 순서가 잘 잡히지 않기 일쑤입니다. 방안에 앉아 전화 몇 통화로 거름 뿌리고 로터리 하고 이앙기 날짜 맞춰 모판만 내가면 끝나는 것인데, 그게 단순해도 남의 손을 빌려야 되는 일이라
박 형 진 시인의감성편지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이 독이 되어서 아침에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밥상 차려내온 안식구 얼굴 보기 미안하여 밥 한 그릇을 억지로 비웠지만 설거지 끝낸 아내가 조카네 일하러 나가자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한숨 푸욱 자고나면 좋겠는데, 속이 부대끼는 통에 잠도 잘 오지 않더군요. 어찌어찌 겨우 얕은 잠 한숨을 자고
박형진 시인의감성편지 거실 문 옆에 놔둔 신발장 근처에서 곤줄박이 한 마리가 서성이는 게 며칠 전부터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봐 넘겼는데 사람이 옆에 가면 그 근처 어디에선가 포르르 거리며 날아가곤 해서 아하! 새끼를 치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하며 자세히 신발장을 살펴보니 안식구가 꼭 일주일에 한 번씩 꺼내 신고 해금을 배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