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입니다. 잠시 한파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은 낮과 밤의 기온이 차분하게 내려가는 때맞춤일 뿐입니다. 환절기의 새삼스러움이 익숙함으로 바뀌었습니다.요즘 기후가 워낙 별스러워서 느닷없이 겨울 한복판에 더위를 던져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때 그러더라도 요 며칠은 얌전하고 착실한 소녀 같은 겨울이어서 볕 바른 곳에 앉으면 온화합니다.이 따뜻함에서 봄볕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낍니다. 추위를 살짝 밀어내는 양지의 따스함은 곁불 쬐기 같은 안도감을 줍니다. “고양이 하고 짝해서 조는 거지”그러고 보니 제 곁에서 고양이도 곁불을
올해는 된서리가 오기 전에 먼저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먼저 왔습니다. 추위가 예고되자 아내는 기념사처럼 말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고추 다 뽑아야 해. 지난해처럼 또 충전 전기톱으로 자를 거야?” 마치 애를 어르는 것 같은 말투군요. 살짝 기분이 상합니다. “아니, 뽑을 거다, 왜?” 시큰둥하게 답하자 아내가 명토 박습니다. “오늘 중으로 다 해.” 같이 하자고는 못합니다. 아내는 막바지에 이른 고추 꼭지 따기를 마쳐야 합니다. 다들 별나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첫물부터 끝물까지 모두 모아서 고춧가루를 냅니다. 대량 재배를 하지
밤사이 비 온 듯 이슬이 내렸습니다. 요사이 새벽 풍경이 그렇습니다. 흠뻑 젖은 풀이 이슬 무게에 축 늘어져 버거워합니다.덤바우 밭을 둘로 나누는 나지막한 동산 자락 바위틈 철쭉이 꽃 몇 잎을 피웠는데, 역시 찬 이슬에 봉오리가 뭉개지다시피 했습니다. 봄과 가을은 엇비슷합니다만, 가는 방향이 반대라서 느낌이 다릅니다. 봄꽃은 무어라 이름할 필요조차 없는 풍성한 약속인데 가을꽃은 애먼 미련처럼 보입니다.아쉬움이나 회한일지도 모르겠군요. 언젠가 난쟁이 명아주가 꽃대를 올린 채 서리 맞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의연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가을이 발등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을 하늘이 높다고는 하지만, 제게 가을은 내리는 비와 같아서 정수리를 적시는가 싶다가 어느결에 발등에 고이는 것입니다.비와 달리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고 오랫동안 내내 낮게 드리운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한기에 발목이 시리고 이내 가슴의 열도 식혀줍니다.여름내 잊었던 그 냉랭함이 좋습니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외려 편안하고 새벽마다 적셔놓은 흙을 밟을 때마다 뒷덜미가 선뜻해서 정신이 맑아집니다.덤바우 후미진 곳에 다문다문 양지꽃과 이질풀꽃이 피어났습니다. 가을이 일깨운 것이죠. 이어서 여름이 오건 겨울
동트기 전 깜깜한 새벽에 개가 짖습니다. 막내 강아지,‘다지’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짖는데, 아마도 농막 마당에서 농로까지 냅다 달리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한 때, 철망을 둘러 개들을 가두어 둔 적이 있습니다. 아무 풀숲에나 다니게 두면 진드기들이 붙어 애를 먹어 그리 하고 있습니다.기후변화 탓인지 뒷산 넓은 호두 밭에서는 매년 진드기가 창궐합니다. 봄, 가을로 부화기가 되면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새끼들이 먼지처럼 퍼져있어 호두 줍기는 관두고 웬만하면 피해 다닐 정도입니다. 개에 옮으면 사람도 다칠 수 있으니 겨울에서 봄에
또 비가 옵니다.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한밤중까지 쉼 없이 옵니다. 우리말에는 비의 종류가 무척 많습니다. 안개비, 는개,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실비, 장대비, 여우비, 억수, 웃비, 단비, 바람비 등 한자어까지 더하면 50여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어느 해인가 하도 비가 안 와서 비타령 한답시고 그런 비의 종류를 외운 적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중얼거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오로지 비에 기댄 농사짓던 조상 농민들의 예민함이 그토록 다양한 비의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오는 비에 따라 해야 할 일 또한 다르니 일
무더위와 잦은 비가 9월 중순까지도 여전합니다. 기후변화가 확연합니다. 매년 거듭되던 가뭄에 복수라도 하듯 걸핏하면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이었습니다. 날씨 변덕에는 약이 없으니 장차 농사가 걱정입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습니다.한때 많은 농민이 앞으로 농작물 재배는 죄다 비닐하우스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봄 일교차가 너무 심해 매년 만성적인 피해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도 아니라는 분위기입니다.봄부터 극심한 더위가 오고 가을까지 식을 줄 모르는 탓에 비닐하우스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의 미니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탄저병 습격이 두려워 비 오기 전에 황치고, 비 그친 후 또 치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때가 그렇습니다.“전기세 감당 안 되겠네.” 기껏 허리 시리게 약 치고 돌아섰더니 이렇게 심드렁한 위로를 건네던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낸 일도 그렇습니다. 가지 말리려고 널어놓았는데 날이 흐려지자 무심한 하늘만 고개 젖혀 바라보던 아내의 얼굴이 그렇고, 결국 곰팡이 파랗게 피어 액비통에 넣던 일이 그렇습니다. “가지 차가 몸에 좋다던데.”라고 했다가 등판을 한 대 얻어맞은 날도 그렇습니다.
“저것 좀 봐!”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자태와 무늬를 바꾸는 덤바우 풍경의 한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이럽니다.감수성이 풍부한 것과는 거리가 먼 아내의 경탄은 딱 이정도입니다. 이십여 년을 보아온 풍광이니 몇 마디 토를 달만도 한데‘봐’에서 뚝 멈춥니다. 저는 아내와 달라서 산과 들,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한 컷의 아름다움을 눈치 채면 이렇게 말합니다.“뭐 하러 돈 들여 외국 여행하는지 몰라.”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눈은 노을이나 안개,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산에 둔 채로 제 등짝을 손바닥으로 철썩 칩니다.
아내가 아침부터 시큰둥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내가 부어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밤 일 하느라 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던 아내에게 빨리 자라고 한마디 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공교롭게도 아내는 올해 이미 실패한 토종 증식 목록을 작성하던 중이었거든요. 안 그래도 자책 중이던 아내한테 쓸데없는 일 그만하고 자라고 했으니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한바탕 제 탓을 하고 나서 벽에 이마를 대고 돌아누웠던 아내였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이미 벌어진 일’ 인데 그래 봐야 기분만 더 상한다고 충고를 했더니 발딱
이른 아침, 아내에게 고하고 호스를 대어놓은 개울로 향합니다. 가뭄 때문이 아니라서 한결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아마도 지난 태풍에 내린 큰비로 불어난 물에 호스 끝이 흙에 파묻혀 물이 끊겼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호스 이음새에 가재가 끼어 막혔을 수도 있습니다.언덕길을 오르자 낯익은 오동나무가 나타납니다. 나이가 꽤 들기는 했어도 한 해 사이 둥치가 더 굵어지고 가지는 품이 더 넓어지고 키도 더 큰 것 같습니다. 그 그늘을 지나 턱을 내려서면 개울입니다. 철철 물 흐르는 소리가 납니다. 근래 듣기 어려웠던 물소리입니다.바위를 징검다리
“고추가 크지를 않아.”아직 어둑한 새벽 고추밭 어귀에 선 아내가 하는 첫마디입니다. 잠이 덜 깬 저는 시큰둥하게 답합니다.“ 눈곱이나 먼저 떼고 걱정하시지? “꽃도 잘 안 드네.”지난해에도 늦은 고추가 만발하여 익지 않아 덧없이 새파란 것들 서리 전에 따느라 고생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 껀 왜 죄다 늦는지 모르겠어.” 잦은 비와 불볕더위 탓에 내남없이 농작물이 전국적으로 엉망인데 아내는 자책하는군요.“그래도 탄저병 없이 지나가고 있잖아. “흥, 언제 덮칠지 어떻게 알아?” “담배나방 피해도 거의 없고. 좋잖아. “비쩍 말라
7월 하순에 보는 덤바우의 대표 풍경은 바랭이입니다. 식물에 포식자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만, 놓아두면 김매기가 속수무책입니다. 기동성(?)이 좋아서 마치 뜀박질하듯이 줄기에서 뿌리를 내려 성큼성큼 자기 영역을 확장합니다. 이파리도 거의 1m에 이르도록 키가 큽니다.뿌리의 아귀힘이 강해 조금이라도 가물라치면 흙바닥에서 떼어내는 게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닙니다. 고랑에 제초매트를 깔아 그나마 덜하지만, 어디 건 빈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비집고 나와 무람없이 제초매트 위에까지 뿌리를 뻗습니다. “흥, 처서가 멀지 않았나 보네.”호미를 든
뙤약볕에서보다 빗속에서 일하는 게 더 힘듭니다. 거추장스러운 비옷을 입고 이 밭 저 밭 건사하다 보면 녹초가 되고 맙니다. 두 부부가 초저녁부터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 들고, 그래서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면 자명종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아내는 잠을 깨워주는 자명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알람이 알아서 깨워줄 터이니 안심하고 잘 자는데, 아내는 그 알림이 마뜩잖아 잠을 설친다고 합니다. 그래 놓고서는 자명종이 연신 울리는데도 쿨쿨 잘 자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누가 대신 깨워주는 게 싫을 뿐 신경이 너무 예민해서는 아니므
구불구불하고 좁은 국도를 타고 덤바우에 들어오다 보면 우리 지역 농사가 어떤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시내와 이웃한 강변의 범람원, 너른 들판에는 늘 대파가 그득합니다. 엊그제 시내에서 들어오면서는 밭 가로 그늘막이 여럿 설치되어 있는데,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앉아 출하할 대파를 다듬는 모습이었습니다.멀찌감치에서도 매콤하면서도 향긋한 파 내음이 차 안까지 퍼졌습니다. “요즘은 대파 값 좋으려나?”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속도를 늦추더니 그 광경을 흘깃거리며 묻습니다. 올해는 얼핏 보아도 작황이 좋은 것 같다고 하니까 아내는 또 폭
올해는 제대로 장마가 왔습니다.“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윤흥길,‘장마’) 이 소설의 첫 구절과 딱 맞아떨어지는 장마의 시작입니다. 늑장부리다가 완두 못 털어놓고 잘난 척 너스레나 떤다고 아내가 비웃습니다만, 사실이 아닙니다. 올해 장마는 그렇게 왔습니다. 완두 꼬투리가 푸른빛을 잃을 랑 말랑 하는 바로 그 때, 비구름이 꾸물꾸물 덤바우에 다가선 것이죠.올해 장마는 정통(?) 장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는 듯 오고, 오는 듯 가다가 불현
새벽부터 쇠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아내가 호미와 낫을 모두 꺼내놓고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호미 저 호미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합니다.제 눈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호미들인데 호미 날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각도까지 가늠하는군요. 그것으로도 모자라 낮게 들고 쓱쓱 호미질 시늉까지 해가며 열심입니다. 아마도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아 그러는 것 같아 슬그머니 지나치려는데 한마디 날아옵니다. “호미 썼어?” 호미야 요즘 어깨 시리도록 쓰는 물건입니다. “왜, 쓰던 거 없어?” “제발 나 쓰는 건 손대지 마.” 저는
하지를 앞두어선지 햇볕이 무척 뜨겁습니다. 갈아놓은 밭에서 반사되는 빛이 눈을 따갑게 찌릅니다. 비 예보가 있어 고추 줄띄우기를 서둘러야 하는데 휴대폰이 웁니다.‘안전안내문자’가 왔습니다.‘폭염주의보 발효...야외활동을 자제해주시고...’ 읽는 중에도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상하게 ‘자제해주시고’ 라는 구절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농사일로 몸도 마음도 바쁠지라도 이런 날씨에는 자제하라는 말로 들려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아내는 당장 눈을 새치름하게 뜹니다.“하나마나 한 얘기를 문자로 보내네.” 사실입니다만, “우리, 좀 자제하자.
소나기가 잦은 6월입니다. 한차례 실패한 바 있는 참깨 모종 내기에 재차 도전 중인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비닐하우스에 넣어 두면 비 맞을 걱정은 없으나 아내가 극구 반대하고 저도 탐탁지 않아 한데 널어두었습니다. 활대 꽂아 터널을 만들고 그 위를 부직포로 덮어 뙤약볕을 피하고 밤사이 이슬에도 젖지 않도록 해 두었는데요. 비 가림은 되지 않으니 덮을 거리가 필요합니다.“어디 작은 갑바 있을걸?”일차로 찾다가 실패한 제게 아내가 등 너머로 말합니다.“갑바가 뭐야, 그거 일본말이잖아.”날도 뜨겁고 해서 괜한 시비를 붙었더니
아내가 새벽부터 투덜댑니다. 참깨 모종이 싹은 잘 나왔는데, 무슨 일인지 누렇게 시드는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고 속상해합니다.“그러게. 반은 살겠지, 뭐. 새로 또 넣자.”제가 눈 딱 감고 한마디로 ‘쿨’ 하게 외쳤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옵니다.“ 그러자. ”아내도 ‘쿨’ 합니다. 참깨 모종판을 굽어보던 아내는 먼지라도 털 듯 바짓가랑이를 툭툭 털고는 낫을 들고 나섭니다. 그 모습이 안 돼 보여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슬 맞게 놔둬서 그런가 봐.” “제발 모종 관리 좀 잘 해요, 엉!”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