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겠지만 태평성대라는 말은 중국의 요순시대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격양가는 태평성대의 요순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어느 날 요임금이 민심을 살피러 거리로 나가보니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더랍니다. 그 노래를 듣고 요임금이 크게 만족해 &
이러저러 바쁜 농사일들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포도알 솎기와 봉지 씌우기가 진행될 다음 주까지는 숨 가쁘게 바쁜 나날이 이어질 것 같군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밤하늘 별이나 구경할 겸 밖으로 나와 보니 뭔가 반짝반짝 빛나며 밭 주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이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겁니다. 제 눈에는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실대는
형님.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날씨도 이곳과 비슷하다 하셨죠? 그렇다면 그곳도 여기처럼 초여름에 들어서고 있겠군요.6월 둘째 날 이곳 영동은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하루 종일 휭휭 소리를 내어가며 바람이 거칠게 불었습니다. 새들도 모두 자취를 감출 정도였죠. 바람이 불고 새들은 가고 비는 오고… 자연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이렇듯 심하
하얀 찔레꽃이 어느새 소리 없이 져버렸다. 미처 향기를 맡아볼 새도 없이. 그 향기가 너무 슬프다며 누군가 목 놓아 노래하던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은 홀연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 찔레꽃이 지면서 여름은 시작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도 한낮 온도는 이제 30도를 육박하고 있다. 드디어 온갖 생명의 잔치가 시작된 것
도시는 농촌에 비해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인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이를 가로막는 온갖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로 출근해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고, 점심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그리고 퇴근하면 다시 지하철로 집에 오고…. 일상은 TV, 인터넷, 개인휴대용멀티미디어 등 각종 미디어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니 특
5월은 새싹들의 달이다. 나무들마다 어느새 새싹이 올라와서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고 있다. 왜 5월이 어린이의 달이고, 그들을 가리켜 왜 새싹이라 표현했는지 실감한다.인간의 삶 역시 자연 속의 일부이기에 예부터 우리는 자연현상을 빌러 삶의 모습을 표현해 왔다. 자연과 비교하고 비유의 대상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살찌우는 행위였다. 자연에서
오월에 들어섰다. 산골 여기저기서 철쭉이 붉게 빛나며 요동을 친다. 시나브로 만물의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다. 온갖 생명들은 살아있음에 기뻐 춤추고 씨앗을 잉태하여 본연의 삶에 충실을 다한다. 고추모종을 심기 위해 텃밭을 다듬는데 민들레 하나 눈에 띄었다. 꽃은 이미 졌으나 씨방 가득한 홀씨들은 이제 자유롭게 세상을 주유할 준비가 된 모양이다. 시인 박노해는
봄이 무르익고 있다. 불규칙한 날씨 속에서도 블루베리 묘목들은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으며 감나무, 호두나무, 매실, 사과 등 농장 곳곳의 유실수들도 활개를 펼치고 있다. 포도나무 가지에서 삐죽삐죽 솟아나오는 발그레한 새싹들도 수줍음을 떨치고 과감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에 옥수수를 심었던 밭에 올해는 지황을 심었다. 지황은 강장과 빈혈 등에 좋다고 해서
곡우(穀雨)에 비가 내렸다. 대충 내리다 그치지 않고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줄기차게 내렸다. 땅을 흠뻑 적신 진짜 비가 내린 것이다. 봄 가뭄에 애 태우던 농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처럼 내리는 단비를 기꺼이 맞으며 그들은 밭둑을 다졌고 물꼬를 손질했다. 24절기 중 봄의 마지막 절기가 지나감으로써 봄은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 곡식을 싹 틔울 비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 했던가. 청명·한식이 6년에 한번 꼴로 돌아온다는 같은 날에 겹쳐 지났다. 만물이 맑고 밝아진다는 청명이 지나니 대지는 푸르고 맑게 다시 태어난 듯하다.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걷히고 있는 어느 새벽, 뫼밭에 쑥 향기가 진동한다. 선조들은 청초하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일컬어 ‘
필자가 영동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산들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군 전체를 산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으며, 해발 600미터 내외의 산들 기세가 자못 늠름하고 호방하다.영동은 이러한 지형의 영향으로 일교차가 큰 대신 충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일조량도 많아 포도, 감, 호도 등의 과실농사가
엊그제 저녁 A마을의 병수 형님과 오래간만에 안부를 나누었다. 그 형님은 내가 이곳 영동에 정착하기 전 농사의지와 가능성 등을 미리 점검하기 위해 1년 동안 그곳에서 사는 동안 가장 가까웠던 분이다. 형님과 통화하면서 인호 형의 근황을 물었다. 작년 여름에 통화를 했을 때만 해도 인호 형은 봄에 마을을 떠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팔순을 넘기신 노모를 홀
아저씨네 가묘(假墓)를 쓰던 날은 다행히 날이 좋았다. 수도권과 인근 도시에 흩어져 살던 자식 손주들이 이른 아침에 고향집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날씨도 좋은데다 온가족이 빠짐없이 모여들자 어제까지만 해도 낯이 어두웠던 아저씨, 아주머니의 얼굴이 한결 밝아지셨다. 묏자리는 부부가 수십 년 넘게 살아온 집을 동쪽에서 마주하는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다. 가묘를 만
봄볕에는 며느리를 들녘으로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내라 했든가. 따가운 햇살에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그을려가고 있다. (기왕에 속담이 나왔으니)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님도 몰라본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보면 봄볕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 보다. 하기야 봄철에는 공기가 건조해져서 자외선이 은근히 강해지지만 가을이 되면 습도가 높아지
겨우내 멈춰 있던 경운기 엔진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이곳 영동 포도 농가들의 일손이 바빠진 것이다. 농기계와 농기구들이 아무 이상이 없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시설을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지금이 해야 할 때이다. 비닐, 박스 등 농자재를 신청하는 일도 중요하고, 지난 가을에 미루어 두었던 나무에 거름을 내는 일도 서둘러 해야 할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고 적막하다. 간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점심때가 지난 지금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가히 온 세상을 집어 삼킬 듯 거침이 없다. 차 한 잔을 진하게 우려내어 폭설과 마주한다. 쏟아 붓는 듯한 눈의 세력에 비하면 인간세계는 얼마나 나약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을. 생사의 멍에를
하늘가에 산허리가 금을 긋고 있다. 하늘과 구름과 산이 맞닿아 있는 곳, 그 공간에 이따금 새가 질러가곤 한다. 차분히 가라앉는 시간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의 썰렁한 밤기운이 뫼밭에 가득하면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맑아지는 듯하다. 어디선가 화두(話頭) 하나 날아든다. “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회사를 그만두기 1년 전쯤의